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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e-Shop > 영어 그림책 작가탐구 > 존덴버
제목이나 가사를 잘 모른다 해도 듣는 순간 “아, 이거?”하고 알아채는 유명한 팝송이 있으실거예요. 존 덴버는 바로 그런 노래를 숱하게 부른 가수랍니다. 특히 “Take me home country road~," 이 한 구절은 모르는 분이 없으시겠죠? 그의 노래는 서정적인 가사와 따라 부르기 쉬운 멜로디로 만인의 사랑을 받았 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잘 알려진, 그리고 가장 사랑받은 음악인이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요. 그의 음악 인생은 30년에 걸친 것으로 300곡이 넘는 노 래를 발표했습니다. 그중 반은 그가 만든 것이지요. 1977년에 콜로라도 주지사 로부터 “콜로라도의 계관시인”이라는 영예를 얻은 것도 여기에서 기인한 것입 니다.

존 덴버는 가수로서뿐만 아니라 작사 작곡자, 연주자, 배우, 환경 보호론자, 박 애가로서도 잘 알려진 인사랍니다. 이번에 존 덴버의 아름다운 노랫말이 실린 그림책이 나왔습니다. 이 기회에 명민하지만 소박했던 이 인물에 대해 한번 알 아보실까요?
‘존 덴버’는 그의 진짜 이름이 아닙니다. 그는 1943년 12월 31일, 헨리 존 듀센도르프 주니어(Henry John Duetschendorf Jr.)라는 복잡한 이름을 가지고 태어났지요. 태어난 곳은 뉴멕시코 주의 로스웰(Roswell)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미 공군 장교이자 비행교관이었습니다. 존은 전형적인 군인가족이 그렇듯 미국 서남부와 남부를 전전하며 살았습니다. 그는 아 버지처럼 파일럿이 되기를 꿈꿨지만 가정적이지 못한 아버지의 삶을 닮기를 원하진 않았습니다. 그의 회고록을 보면 어 려서 그는 집에서 많은 문제를 가졌다고 고백했습니다. 특히 아버지와 충돌이 많았다고 했습니다.

그의 예술가로서의 인생은 가족이 투산(Tucson: 애리조나 주 제 2의 도시)으로 이사가면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거기 서 그는 12살 때 할머니의 재즈기타를 받았죠. 수줍은 소년이었던 존에게는 단 둘뿐인 친한 친구가 있었는데 바로 자연 과 그의 기타였습니다. 존은 꾸준히 기타 레슨을 받았고 대학에 들어갈 나이에는 클럽에서 연주할 정도의 실력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존은 기독교인으로 자랐습니다. 어려서는 장로교인이었지만 나중에 루터교로 개종했습니다. 또한 선종불교와도 많은 교 류가 있었죠. 그는 또한 북미원주민들에게 친밀한 감정을 가졌습니다.
1963년, 존은 텍사스 공대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있었는데 음악을 하기 위해 학교를 그만두고 LA로 이사했습니다. 거기 서 친구들이‘존 서머빌(John Sommerville)’로 이름을 바꿀 것을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기가 사랑한 콜로라도 주 의 수도 이름을 따서 ‘존 덴버’로 이름을 붙였지요.
LA에서 그는 포크 클럽에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1965년, 250대 1의 경쟁을 뚫고 ‘채드 미첼 트리오’의 리드 싱어 로 선발되었습니다. 트리오로 노래를 하면서 존은 자신의 목소리를 연마했고, 자기만의 작사 작곡 스타일을 발전시켰습 니다. 1969년 존은 밴드 생활을 청산하고 솔로로 재출발을 했습니다. 그의 첫 앨범은 큰 성공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여 기에는 “Leaving On A Jet Plane"란 명곡이 있었고 이 노래는 유명 혼성트리오 ‘피터, 폴 앤 메리(Peter, Paul and Mar y)’가 부름으로써 이 트리오의 최초이자 유일한 넘버원 히트곡이 되었습니다.


[Peter, Paul and Mary 사진]
채 2년이 지나지 않아서 존 덴버는 팝 차트에 이름을 자주 올리 는 가수로 성장했습니다. 당시 히트곡들로“Take Me Home Co untry Roads," "Rocky Mountain High," "Sunshine On My Sh oulders," "Annie's Song," "Back Home Again," "Thank God I'm A Country Boy," 그리고 "Calypso"가 있습니다. 그를 최고 가수로 만들어준 노래들이자 아직까지도 잊혀지지 않고 사랑받 는 노래죠.

존 덴버의 콘서트 투어는 전 세계적적으로 몇 백만이 몰려드는 행사였습니다. 전 세계가 그의 새 앨범을 기다렸고 다투어 사갔 습니다. 그 결과 미국에서만 골드앨범이 14장, 플래티늄 앨범이 8장에 달합니다. 1974년 발표한 베스트 앨범은 세계적으로 1천 만 장 이상이 팔렸고 차트에는 무려 2년 여 동안 머물렀을 정도 였답니다.

존은 청중을 정말로 아낀다는 느낌을 주는 가수였습니다. 그는 사람들을 위해 줄 수 있는 한 무엇이든 주려했습니다. 그 는 인간답고, 성실하며 부드러운 사람이자 가수였습니다. 1969년, 그는 미시건주의 시골에 있는 알마 대학에서 공연이 있었습니다. 존은 곧 청중을 휘어잡았고 그 공연은 성공을 거뒀습니다. 당시 그는 막 솔로 활동을 시작한지라 잘 알려진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사실 그의 첫 솔로 대학공연이었답니다. 따라서 공연사례금도 아주 낮았습니다. 겨우 750 달러였 죠. 하지만 그의 인기는 곧 치솟았고 2년 후인 1971년에는 바라보기조차 힘들 정도의 위치에 서게 되었습니다. 알마 대 학에서 다시 존을 초청하고자 했을 때 존의 에이전트는 사례금이 평균 25,000 달러에 달한다고 말했거든요.

하지만 존은 그 대학과 사람들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3000달러만 받고 공연을 하기로 약속했죠. 존은 그 대학에 서 총 3번 공연했습니다. 1971년 1월, 눈보라 속에서 대학 공연장으로 가던 그의 차가 고장이 나고 말았습니다. 당시 체 육관에서 기다리던 800명의 사람들은 점차 동요하기 시작했고 주최자는 사과하며 환불을 약속하고 있었습니다. 800명이 라면 별것 아닌것 같지만 그 대학은 정원이 1000명에 지나지 않는 작은 곳이었습니다. 또한 미시건 주 시골에 있었죠. 따라서 그곳에서 800명이란 엄청난 인원이었답니다.

그때 옆문이 열리며 눈으로 덮인 기타를 들고 존 덴버가 나타났죠. 그는 눈보라 속에서 2마일을 걸어온 것이었습니다. 곧 체육관은 흥분과 환희로 광란상태로 빠졌습니다. 존 덴버는 마이크를 잡고 말했죠. “여러분, 누군가를 기다린다는게 참 어렵죠. 하지만 믿어주세요, 늦는 사람편이 훨씬 더 힘들다는 걸요.” 대부분의 졸업생들은 바로 그 시간이 학창시절 중 최고의 시간이었다고 떠올린답니다.

2번째로 왔을 때 체육관은 사람들로 터질 지경이었습니다. 여기서 그는 전에는 연주하지 않았던 새 곡을 부르겠다고 했 습니다. 그건 바로 “Country Roads" 였답니다. 그리고 그 3번의 공연동안 존은 늘 ‘애니’라는 이름의 여자를 위해 노래 를 불렀습니다. 바로 후에 그의 아내가 된 ‘애니 마텔’이었죠. 존은 “Annie's song"을 부르기 이전에도 늘 그녀를 위한 노래를 불렀던 것입니다.

존 덴버는 TV에도 여러번 출연했습니다. 전 세계로 방영되는 콘서트를 비롯해 어린이를 위한 The Muppet Show, 심지 어는 조지 번스와 출연한 1977년작 영화 “Oh, God!"까지 다양합니다. 그래미상을 5번이나 진행했고 “The Tonight Sho w"에도 자주 출연했습니다. 그가 진행한“Rocky Mountain Christmas"는 6000만 명이 시청한 쇼로, ABC 방송국 사상 최 고로 시청률이 높은 프로였습니다.

공화당 지도자와 대통령들과 그다지 가깝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존은 닉슨 대통령과 아버지 부시 대통령의 만찬에 자주 초대받는 손님이었습니다. 존 덴버가 그만의 독특한 이미지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덥수룩하게 깎은 금발머리, 평범한 청바지와 카우보이 부츠, 행복하고 긍정적인 이미지, 서부 액센트 등, 그의 미국적인 이미지와 평화와 화합을 위 해 부드럽게 노래하는 모습은 그를 인기 많은 연예인으로 만들었습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존의 개인적인 성장과 예술가로서의 진화에서 나타난 변화가 음악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습니 다. 그의 세 번째 앨범이 나온 1970년은 존의 사회적, 정치적 경향이 보다 명백해진 시기였습니다. 그는 음악을 통해 환 경 메시지를 전달한 최초의 예술가였습니다. 그 시작은 “Whose Garden Was This?"인데, 존 덴버가 쓴 많은 환경관련 노래 중 첫 번째이지요. 팬들은 환경과 인간애를 노래하고, 진심에서 우러난 평화 메시지를 전하는 존 덴버와 그의 음악 에 열렬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사랑, 가족, 가정, 자연, 자유와 평화를 노래하는 그의 음악은 사람들의 가슴 깊은 곳까지 건드렸기 때문입니다.

1970년대 중반 존 덴버는 정치에 대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1976년 그는 지미 카터 선거운동을 도왔습니다. 이 것을 계기로 존은 지미 카터의 친한 지기이자 동료가 되었지요. 존은 민주당 후원자가 되었고, 환경, 노숙자, 가난한 사 람들, 아프리카 에이즈 환자들, 굶주리는 사람들를 위한 자선활동을 했습니다. 체르노빌 피해자들을 위한 콘서트도 열었 고요. 우주 탐험에도 관심이 있었죠.

1977년 존 덴버는 “The Hunger Project"를 공동설립했습니다. 그는 죽기까지 이 조직을 지원했습니다. 또한 지미 카터 대통령의 기아관련 대통령 특사로 임명받아 일하기도 했지요. 그는 ”I Want to Live"를 써서 위 재단의 테마송으로 쓰기 도 했습니다. 유니세프 콘서트에서 공연을 함으로써 전세계에 그 이름을 알리기도 했고요.

1980년대, 그는 레이건 행정부의 환경과 국가방위 정책을 비난하며 미국의 일방적 무장해제를 주장했습니다. 그 외에도 미국총기협회를 비난했고, 북극 자연생태계 피난처를 알래스카에 만드는 일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1985년에는 당시 소련으로부터 초청을 받아 유명 소련 여가수 Alexandre Gradsky와 듀엣으로 “Let Us Begin (What Ar e We Making Weapons For?)"을 다시 불렀습니다. 이 노래는 미국인 가수와 소련 가수가 함께 부른 최초의 노래입니다. 이 노래의 비디오는 전 세계인들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존 덴버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러시아인들은 ‘첫 제비가 봄 을 불러오진 않는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 제비는 최소한 예전보다 따스해진 기후를 나타내지 않던가요? 난 그 제비 가 되고자 했습니다.”

존 덴버는 또한 1992년 10월, 중국에서 공연한 최초의 예술가가 되었습니다. 그는 중국인들이 그의 노래를 얼마나 좋아 하고, 또 잘 알고 있는지를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중국인들에게 있어“Country Roads"는 서양에서 만들어진 노래 중 가 장 유명한 노래라는 소리를 듣기도 하고요.
1963년, 존은 텍사스 공대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있었는데 음악을 하기 위해 학교를 그만두고 LA로 이사했습니다. 거기 서 친구들이‘존 서머빌(John Sommerville)’로 이름을 바꿀 것을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기가 사랑한 콜로라도 주 의 수도 이름을 따서 ‘존 덴버’로 이름을 붙였지요.

LA에서 그는 포크 클럽에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1965년, 250대 1의 경쟁을 뚫고 ‘채드 미첼 트리오’의 리드 싱어 로 선발되었습니다. 트리오로 노래를 하면서 존은 자신의 목소리를 연마했고, 자기만의 작사 작곡 스타일을 발전시켰습 니다. 1969년 존은 밴드 생활을 청산하고 솔로로 재출발을 했습니다. 그의 첫 앨범은 큰 성공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여 기에는 “Leaving On A Jet Plane"란 명곡이 있었고 이 노래는 유명 혼성트리오 ‘피터, 폴 앤 메리(Peter, Paul and Mar y)’가 부름으로써 이 트리오의 최초이자 유일한 넘버원 히트곡이 되었습니다.

채 2년이 지나지 않아서 존 덴버는 팝 차트에 이름을 자주 올리는 가수로 성장했습니다. 당시 히트곡들로“Take Me Hom e Country Roads," "Rocky Mountain High," "Sunshine On My Shoulders," "Annie's Song," "Back Home Again," "Thank God I'm A Country Boy," 그리고 "Calypso"가 있습니다. 그를 최고 가수로 만들어준 노래들이자 아직까지도 잊 혀지지 않고 사랑받는 노래죠.

존 덴버의 콘서트 투어는 전 세계적적으로 몇 백만이 몰려드는 행사였습니다. 전 세계가 그의 새 앨범을 기다렸고 다투 어 사갔습니다. 그 결과 미국에서만 골드앨범이 14장, 플래티늄 앨범이 8장에 달합니다. 1974년 발표한 베스트 앨범은 세계적으로 1천만 장 이상이 팔렸고 차트에는 무려 2년 여 동안 머물렀을 정도였답니다.

존 덴버의 히트송 가운데 하나인 “Rocky Mountain High"는 콜로라도의 공식노래랍니다. 그의 고향 콜로라도 주 아스펜 근처 리오 그란데 공원에 그의 노래비가 있죠.


[노래비]
사실 그의 유명한 노래들은 개인적인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 많습니다. “Annie's Song"은 아내 애니를 위해 만든 아름다 운 노래입니다. 미국 결혼식장에서 많이 불리는 사랑의 노래 죠. 그와 애니는 아이가 없자 아들 재커리와 딸 애나 케이트를 입양해 키웠습니다. 존 덴버는 아들 재커리를 주제로 ”A bab y Just Like You"를 썼습니다. 이 노래는 프랭크 시나트라를 위해 쓴 The Muppet christmas Special에도 나왔답니다. 그 러나 그의 엄청난 성공과 바쁜 스케줄로 인해 가족들과 멀어 졌고 결국 결혼 16년만인 1982년에 이혼을 하고 맙니다. 하지 만 애니와는 돈독한 사이를 계속 유지함으로써 사람들을 놀래 키기도 했지요.

몇 년 후 그는 17살이나 연하인 호주 여배우이자 가수인 카산
드라 딜레이니(Cassandra Delaney)와 결혼해 팬들을 경악시켰습니다. 존이 불임치료를 한 끝에 그들은 제시 벨이라는 딸을 두었지요. 하지만 두 번째 아내와도 이혼하고 말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음주운전으로 여러번 체포되는 등 이 미지에 손상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더 이상 히트송을 내지도 못했고 다만 성악가 플라시도 도밍고와 함께 부른 “Perhap s Love"가 사랑받았을 뿐이었습니다. 또한 심혈을 기울였던 윈드스타 재단도 재정적인 문제에 봉착해 규모와 인원을 줄 이는 조치를 취해야만 했습니다.

존과 애니는 다시 우정을 회복하기 시작했고, 그의 죽음 즈음에는 그들의 화해와 재결합설이 새어나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진짜 그랬는지 확실한 증거는 없답니다.

존은 그가 노래하던 삶을 살았습니다. 가족과 친구와 함께 한 삶, 캠핑, 낚시, 비행, 스키, 승마, 그리고 할리 모터사이클 타기 등이죠.

[존 덴버 비행기 기종]
존 덴버는 비행사였던 아버지의 아들답게 비행을 사랑했습니 다. 그는 제트기, 개인 비행기, 시험비행기, 글라이더 조정면 허가 있었고 비행시간이 2700 시간이 넘을 정도로 경험도 많 았습니다. 그는 특히 곡예비행을 사랑했지요.

1997년 10월 12일, 존 덴버는 자신이 몰던 시험비행기 사고로 사망했습니다. 노던 캘리포니아에서 콘서트를 마친 후 이륙한 비행기가 몬트레이 만의 바다 속으로 추락한 것입니다. 그의 Long-EZ 비행기는 새로 구입한 것으로 사고 전날에 단 30분 간 시험비행을 했을 뿐입니다. 연료탱크 중 하나의 연료가 다 떨어지자 다른 연료통으로 전환시키려다 실수로 다른 계기를 건드려 그런게 아닌가 하는 추측이 있습니다. 목격자들에 의 하면 비행기가 갑자기 바다로 곤두박질쳤다고 합니다.

존 덴버의 사망소식을 접한 콜로라도 주지사 Roy Romer는 조의를 표하기 위해 모든 콜로라도 깃발을 내려달게 했습니 다. 존 덴버의 유해는 그의 할머니가 주신 깁슨 기타와 함께 화장되었고 재는 록키 마운틴에 뿌려졌습니다. 존 덴버가 20년 넘게 회원으로 있었던 시험비행기 협회의 회장 Tom Poberezny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당신이 본 무대 위의 존 덴버는 무대 밖의 그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는 생기가 넘치고, 따스하며, 스스럼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존 덴버의 목소리와 음악, 그리고 시적인 가사는 그의 본성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으며, 이미 죽었지만 그가 남긴 유산은 아직도 수백, 수천만의 마음을 위로해주고 있습니다.
이번에 제이와이북스에서는 존 덴버의 노래를 이용해 만든 아름다운 그림책을 소개합니다. 그의 최고의 히트작이라 부 를수 있는 “Sunshine On My Shoulders”와 “Take Me Home Country Roads" 그리고 자연보호활동에 열심이었던 그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Ancient Rhymes" 가 따스한 그림과 더불어 나왔습니다. 노부영으로 소개되는 것이라 존 덴버가 직접 부른 아름다운 노래 외에 Read along, Echo chant, 멜로디가 담겨 있답니다. 어른들 그것도 60-70년대에 팝송들 즐겨듣던 세대뿐 아니라 지금의 어린이들에게도 존 덴버의 세계를 전해주세요.
Sunshine On My Shoulders
쏟아지는 햇살을 존 덴버만의 분위기로 들어보세요.
미국 컨트리 가수 존 덴버의 인기노래 중 하나인 'Sunshine On My Shoulders'는 같은 제목의 영화 주제가로 쓰여 우리나라에서도 엄청난 히트를 친 곡입니다. 영화 ‘러브스토리’와 비슷하게 불치의 병으로 죽는 여주인공과 그런 그녀를 맹목적으로 사랑하는 남자의 슬픈 운명과 더불어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비극적인 내용이 엄청 인기 있었습니다) 달콤한 노래가사로 당시 청소년이라면 이 노래 한 두 구절쯤은 흥얼거릴 수 있을 정도로 인기가 있었답니다.

이번에 나온 그림책 'Sunshine On My Shoulders'는 바로 그 노래의 가사가 본문의 내용을 이 룹니다. 따스한 노란빛의 배경과 귀여운 소녀가 그야말로 햇살같은 느낌을 주는 책입니다.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아름다운 가사와 그림이 소개되어 있어 어른이나 아이에게나 가슴이 뿌 듯한 책이지요.

어깨위에 내려앉는 햇살에 행복해하고, 자신에게 하루만 더 시간이 있다면 바로 지금처럼 당신 에게 바치겠다는 내용의 가사는 그야말로 지금의 삶에 감사하게 만들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베풀수 있는 현재의 삶이 얼마나 축복된 것인지 실감케 합니다.

저작권 문제로 곡과 가사만 같고 정작 노래를 부른 가수는 다른 책과는 달리 이 'Sunshine On My Shoulders'는 존 덴버가 직접 부른 노래가 담겨 있습니다. 또 Read along, Echo chant, 멜 로디가 들어가 있어 노부영의 장점을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Take Me Home, Country Roads
경쾌한 리듬의 노래가 우리로 하여금 흥얼 거리게 합니다.
존 덴버의 가장 유명한 히트곡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닌 노래입니다. 이 노래가 책으로 재탄생 했습니다. 퀼트 위에 수놓은 것처럼 보이는 아름다운 그림과 노랫말의 조화가 그야말로 잘 어 울려서 아마존의 리뷰를 보면 별 5개가 수두룩한 작품이랍니다.

차로, 미니밴으로, 픽업트럭과 오토바이를 탄 사람들이 아름다운 시골길을 달립니다. 웨스트 버지니아 언덕을 오르고 내리면서 할머니, 할아버지가 사시는 시골로 가족들을 만나러 가는 길 이죠. 시골의 정취, 음악, 가족 간의 유대와 사랑 어느 면에서도 빠지지 않는 책입니다. 그리운 가족을 만나러 시골길을 달리는 사람들의 마음이 느껴지네요.

아이들을 위한 그림책으로 나오긴 했지만 어른에게도 사랑받는 책이기도 하답니다. 사실 존 덴 버의 팬이시라면 놓치기 어려우실 거에요. 존 덴버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아이들도 아주 좋아하 는 책이고요.

CD에는 존 덴버가 직접 부른 흥겨운 노래 외에 Read along, Echo chant, 멜로디가 담겨 있습 니다.
Ancient Rhymes
환경 운동가였던 존 덴버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노부영입니다.
이 아름다운 책은 존 덴버가 1991년에 작곡한 노래 ‘Ancient Rhymes'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 다. 그는 돌고래들과의 수영이라는 놀라운 경험을 한 후에 아기 돌고래가 세상에 나오는 순간 을 그리고 있습니다. A Dolphin Lullaby(돌고래 자장가)라는 부제가 붙은 것처럼 아빠 돌고래 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기를 위해 부르는 사랑의 자장가가 참 아름답습니다.

푸른 돌고래 모양 표지가 보는 순간 눈을 시원하게 합니다. 독자들은 이 책을 넘겨보는 동시에 CD를 같이 듣고 싶어하실 거예요. 음악과 더불어 책이 쉽게 넘어가니까요. 가수로서뿐만 아니 라 22개나 되는 사회단체에 몸 담았던 존 덴버의 자연에 대한 사랑이 느껴지는 책입니다.

CD에는 존 덴버가 직접 부른 노래 외에 Read along, Echo chant, 멜로디가 담겨 있습니다.